세이장

대한민국온전히 남음

세이장(洗耳莊)은 1974년에 음악평론가 박용구 씨의 주택으로 건립되었으며, 지하 1층, 지상 2층의 연면적 155㎡, 건축면적 90㎡ 규모이다. 세이장은 ‘귀를 씻는다’는 뜻으로, 박용구 씨가 아끼던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집이다. 2019년에 현재 소유주로 변경되었다. 세이장은 부채꼴형 대지가 경사진 진입도로와의 고저차를 무리 없이 소화하며 자연스럽고 변화 있는 진입구를 형성하고 있다. 내부공간은 주인 침실을 제외한 거실, 식당, 서재를 입체적으로 개방하여 하나의 넓은 공간을 확보할 수 있도록 계획되었다. 때로는 가변성 있는 튼 벽(문)을 이용해 구획될 수 있어 사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였다. 특히 거실과 정원은 가깝게 접속하여 유기적으로 내외부 공간을 연결하여 채광과 전망을 적극 유입할 수 있도록 계획되었다. 세이장을 설계한 김수근(金壽根, 1931~1986)은 한국 현대 문화예술사를 새로 쓴 건축가이다. 김수근의 전성기는 1970년대로, 1971년 원서동 공간사옥을 비롯하여 1974년 서울대학교 예술관(미술대학, 음악대학), 1977년 서울올림픽 주경기장, 1979년 국립청주박물관 등 여러 주요 건물을 설계하였다. 1977년 타임지는 김수근을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에 피렌체를 중심으로 왕성한 활동을 벌인 로렌초 데 메디치에 견주어 ‘서울의 로렌초’라고 소개하였다. 1960년대와 1970년대의 김수근 건축을 구별짓는 중요한 기준 가운데 하나가 바로 건축 재료의 변화이다. 1960년대 주로 사용한 재료가 노출 콘크리트이었다면 1970년대 주로 사용한 재료는 벽돌이다. 1960년대에 김수근이 설계한 주거건축의 경우 벽돌을 사용한 경우도 있으나, 이 경우는 재료를 가지고 다양한 시도를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지어진 건축물도 그다지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1960년대 말 KIST 본관에 붉은 벽돌을 부분적으로 사용한 이래 김수근은 조적조를 가지고 다양한 실험을 했다. 벽돌로 지어진 초기의 건물들은 전통 흑전돌조로 지어졌는데, 공간사옥의 구관과 창암장, 그리고 세이장이 그런 경우이다. 당시 김수근은 한국성을 표현할 재료를 찾기 위해 고심하고 있었다. 이 때 한 전돌업자가 김수근에게 건물공사에 사용될 전돌을 무료로 제공할 것을 제안하면서 벽돌을 건축외장재로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김수근의 건축철학을 고려할 때, 벽돌 사용은 단순히 건물시공 이상의 철학적인 면을 지닌다. 즉 1970년대에 벨기에 건축가 루시앙 크롤(Lucien Kroll)이 벨기에와 프랑스에서 행한 것처럼 김수근은 벽돌을 통해 한국 전통건축에서 나타나는 목재의 자연미와 같은 재료의 물성을 그대로 드러내고자 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세이장은 김수근이 건축가로서 새롭게 시도한 건축언어들이 집약적으로 담겨 있는 건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서울미래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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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도 37.604503 · 경도 126.959066

출처: 서울미래유산(서울특별시) 인증 2018-009, futureheritage.seoul.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