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수족연구소
「대한의수족연구소」는 1979년 개업하여 2대째 운영되고 있는 의수족 제작업체이다. 불의의 사고로 손이나 발이 잘린 이들은 사람을 만나거나 일을 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 행동이나 활동에 제약을 받기 때문이다. 대한의수족연구소는 이 같은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위해 실제 손이나 발과 거의 같은 의수족을 제공하는 업체이다. 이승호 대한의수족연구소 대표는 18세에 상경하여 아버지의 외사촌이 광화문에서 운영하는 ‘고무손’이라는 의수제작업체에서 청소를 맡다가 의수제작을 시작하게 되었다. 어렸을 때 옆집 형이 팔을 잃고 자살한 것을 보고 느낀 안타까움도 의수제작의 동기부여가 되었다. 보훈병원에서 잠시 연구원으로 취직하였으나 연구실을 주지 않아 1년 만에 나와 1979년 4월 8일 대한의수족연구소를 개업하였다. 1988년 리모델링을 하고 실제 손과 유사하게 만드는 기술특허를 취득하였다. 지금은 장애인 관련 학교, 학과, 국가고시, 의료보험 제도 등이 있어 기술을 익히고 보급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어 있지만 1980년대는 관련 학과와 장애인의료보험의 부재로 의수족제작을 배우기도 힘든 시기였다. 1996년에는 열린한국보장구협회 정기총회에서 신임회장으로 선출되고, 1997년에는 장애인 의수족 관련 정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홈페이지를 개설하여 운영하였다. 홈페이지에는 대한의수족연구소에 대한 소개와 연구개발품, 의수족 상식 등이 서비스 되고 있다. 1997년 IMF사태로 장애인들이 경제적 고통으로 인해 생활고를 겪자 무료로 의수를 지원하고, 각 구청 사회복지과나 장애인과에서 신청을 받도록 서울시에 요청하였다. 1999년 4월 17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승호 대표는 “3D업종에서 일하다 손발을 잃고 실직까지 당한 사람들은 IMF시대에 더욱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지난 1년여 어려움을 겪다보니 주변에 더 어려운 사람들이 생각나더군요.”라고 당시를 회상하기도 하였다. 2000년, 2010년에는 장애인 복지에 기여 한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포장·국민훈장 석류장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이승호 소장이 고안한 기술은 피부 색깔은 물론 지문까지 본래의 모습으로 복원하고 코·귀 등도 제작이 가능하다. 과거에는 산재환자 비율이 높았으나 오늘날에는 산재환자보다도 당뇨, 버거병(폐색성 혈전혈관염), 혈액질환으로 절단된 환자가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의족은 환부에 따라 3~5년, 수족도 사용 연한이 있기 때문에 계속 정비가 필요한 보조기이다. 2001년 이승호 소장은 환자의 의도에 따라 자유자재로 팔꿈치와 손목, 손가락 마디를 움직일 수 있는 전자의수를 개발하였다. 부품을 국산화해 가격이 기존 수입제품의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 2010년에는 인공지능의수를 개발해 실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발판을 마련하였으며, 손가락, 미관용, 지문 의수 개발 등을 통해 보장구의 무한한 발전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승호 소장은 일부 보조기와 의수족 구입 시 의료보험 혜택 적용이 되는 것을 모르는 장애인을 위해 최첨단 의수족 개발 보급에도 노력해 왔으며 2010년 이후에는 NGO단체들과 함께 해외 환자들에게도 의수족을 제작해주고 있다. 이승호 소장의 기술은 2013년 대학에서 의수족 제작 관련 전공을 수학한 아들에게 전수되었으며 2021년 현재 아들 이승민 씨가 사업에 함께 참여하고 있다. 서울로 올라와 의수족 제작을 시작한 이승호 대표의 대한의수족연구소는 의수족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장애인 복지향상에 앞장서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서울미래유산이다.
서울미래유산
이 근처의 다른 기억
출처: 서울미래유산(서울특별시) 인증 2020-003, futureheritage.seoul.g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