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선에 보루가 17개, 쓰인 시간은 80년

아차산 일대 보루군 · 5세기 후반에 깔리고, 551년에 역할이 끊긴 요새

아차산·용마산·망우산·수락산·시루봉·홍련봉. 보루 17~18개 가운데 10여 개가 고구려 것으로 추정됩니다.
아차산 일대 보루군- 홍령봉 1보루 발굴 전경
아차산 일대 보루군- 홍령봉 1보루 발굴 전경
출처: 본 저작물은 '국가유산청'에서 작성하여 공공누리 제1유형으로 개방한 '아차산 일대 보루군- 홍령봉 1보루 발굴 전경'을 이용하였으며, 해당 저작물은 '국가유산청, www.khs.go.kr'에서 무료로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
아차산 일대 보루군
아차산 일대 보루군 · 위키백과「아차산 일대 보루군」

이야기

서울과 구리 경계 산줄기에, 북방의 고구려 요새가 왜 무더기로 남아 있을까요.

보루는 둘레가 긴 산성과 다릅니다. 적의 움직임을 보고 국경을 막으려고, 돌과 흙으로 작게 쌓은 군사 요새입니다. 여기 보루 하나의 둘레는 100m에서 300m입니다. 사람이 오래 살 도성 규모가 아닙니다. 봉우리에 두고, 아래를 보게 만든 크기입니다.

그 보루들이 아차산, 용마산, 망우산, 수락산, 시루봉, 홍련봉과 중랑천 변에 남북으로 몰려 있습니다. 전부 17~18개죠. 그중 10여 개가 고구려 유적으로 추정됩니다. 남한에서 고구려 군사 유적이 이만큼 모여 있는 곳은 여기뿐입니다.

한강을 잡은 뒤에 깐 선

고구려가 5세기 후반 한강 유역에 들어온 뒤, 이 능선에 보루 10여 개를 두고 운영을 시작합니다. 한강과 중랑천은 물길이자 사람이 움직이는 길이었습니다. 그 길을 보고, 남쪽의 백제와 동쪽의 신라를 상대하는 국경선을 산 위에 올린 것입니다.

출토 유물과 쌓는 방법으로 보면 삼국시대 유적입니다. 국경 요새가 어떻게 생겼는지, 방위가 어떻게 나뉘는지, 한강을 어떻게 관리했는지를 이 능선이 보여 줍니다. 보루와 보루가 이어져 있으면, 한 봉우리의 시야가 다음 봉우리로 넘어갑니다.

그 시간은 551년에 끊깁니다. 신라와 백제의 연합군이 공격하고, 고구려는 한강 유역을 잃습니다. 5세기 후반부터 센 약 80년. 산 위 보루의 군사 역할은 그해 끝납니다.

등산로가 먼저 들어오고, 해자는 나중에 나왔다

역할이 끝난 뒤 능선은 한참 동안 흙과 풀 아래였습니다. 현대에 들어와 산책로가 열리고, 군사 시설과 체육 시설이 들어서면서 보루 다수가 훼손됩니다. 석축이 잘린 자리와, 터가 남은 자리가 같이 있습니다.

지정은 그 훼손 이후에 따라옵니다. 2002년 10월 5일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21호가 됩니다. 2004년 10월 27일 사적 제455호 ‘아차산 일대 보루군’으로 지정되면서, 서울시 기념물 지정은 해제됩니다.

복원은 구리시가 먼저 했습니다. 2010년 아차산 4보루, 2012년 시루봉보루. 2013년 4월 23일 홍련봉 2보루를 파다가 해자가 나옵니다. 해자는 성 밖으로 판 고랑입니다. 작은 보루에도 접근을 막는 선이 있었다는 뜻이 됩니다.

아차산 제4보루
아차산 제4보루
출처: 위키백과「아차산 일대 보루군」

한강과 중랑천이 같이 보이는 봉우리라서, 강으로 오는 움직임과 골짜기로 오는 움직임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습니다. 보루를 남북으로 늘어놓은 이유는 그 시야를 끊지 않으려는 배치입니다. 하나가 무너져도 다음 봉우리가 같은 물길을 봅니다.

이름 붙은 자리는 아차산보루, 용마산보루, 시루봉보루, 수락산보루, 망우산보루, 홍련봉 보루입니다. 광진과 구리의 경계 능선이 곧 그 목록입니다. 남한의 고구려 자료는 백제·신라에 비해 적었습니다. 그래서 국경 요새의 크기, 방위가 나뉜 방식, 한강을 붙들고 있던 기간을 유적으로 볼 수 있는 곳이 이 능선에 몰립니다.

둘레 100m는 학교 운동장 한 바퀴보다 짧습니다. 300m짜리가 봉우리 위에 있으면, 그 안은 병력이 오래 눌러 사는 성보다는 교대하며 아래를 보던 자리에 가깝습니다. 열일곱 개가 능선을 따라 있으면, 봉우리와 봉우리가 하나의 선으로 이어집니다.

지정 번호가 바뀐 과정도 그 선을 어떻게 부를지의 기록입니다. 2002년의 서울시 기념물 제21호는 시 단위 지정이었습니다. 2년 뒤 사적 제455호가 되면서 그 시 지정은 빠집니다. 같은 보루군을 국가 사적으로 다시 묶은 것입니다. 이름은 ‘아차산 일대 보루군’입니다. 여러 봉우리의 보루를 한 유적으로 묶은 이름입니다.

복원된 두 곳의 해도 다릅니다. 구리시가 2010년에 마친 것은 아차산 4보루입니다. 2012년에 마친 것은 시루봉보루입니다. 홍련봉 2보루의 해자는 2013년 4월 23일 발굴에서 확인된 유구입니다. 작은 요새 바깥에도 고랑이 있었다는 사실이, 흙을 걷은 뒤에 추가된 것입니다.

지휘관의 이름은 이 기록에 없습니다. 보루마다 처음 쌓은 해도 따로 적혀 있지 않습니다. 전투의 대사도 없습니다. 남은 것은 배치와 연도, 그리고 나중에 확인된 해자입니다. 5세기 후반에 한강을 본 뒤에 깔았고, 551년에 한강을 잃으면서 멈췄습니다. 북방 왕국의 요새가 서울과 구리 경계에 있는 이유는, 그 80년 동안 이곳이 국경이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아차산 4보루와 시루봉보루는 복원돼 윤곽이 보입니다. 홍련봉에는 해자 흔적이 있고, 나머지 다수는 석축과 터로 능선에 남아 있습니다. 주말에 오르는 그 길이, 둘레 100~300m짜리 보루 17~18개가 놓였던 자리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아차산 일대 보루군은 몇 개인가요?
아차산·용마산·망우산·수락산·시루봉·홍련봉과 중랑천 변에 17~18개가 있고, 그중 10여 개 이상이 고구려 유적으로 추정됩니다. 보루 하나 둘레는 100~300m입니다.
언제까지 쓰였나요?
고구려가 5세기 후반 한강 유역에 들어온 뒤부터, 551년 신라·백제 연합군에게 한강을 잃기까지 약 80년으로 봅니다.
지금은 어떻게 남아 있나요?
등산로와 군사·체육시설로 다수가 훼손됐습니다. 2010년 아차산 4보루, 2012년 시루봉보루가 복원됐고, 2013년 홍련봉 2보루에서 해자가 확인됐습니다. 2004년 사적 제455호입니다.

같이 보면

출처

국가유산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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