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중랑천 동쪽에는 아차산·용마산·망우산 보루가 있습니다. 서쪽 배봉산 정상에는 왜 같은 방식의 보루가 있을까요.
배봉산 보루는 동대문구 전농2동 배봉산 정상부에 있습니다. 이웃 보루보다 작고, 성벽 일부를 밖으로 내민 치도 없습니다. 치는 성벽에서 튀어나와 다가오는 쪽을 옆에서 치게 만든 것이죠. 여기에는 그 돌출이 없습니다.
쌓는 방식은 고구려식 토심석축입니다. 나무 기둥을 세우고, 흙을 쌓고, 바깥은 돌로 마감합니다. 그 기법이 아차산 4보루, 홍련봉 보루, 시루봉 보루와 같습니다. 중랑천 건너 보루와 따로 노는 작은 성이 아닙니다. 같은 손으로 쌓은 선이, 천 서쪽에 하나 더 있는 자리입니다.
2016년, 2,935㎡를 파다
2015년까지 정상에는 군사시설이 있었습니다. 일반인은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철거하면서 원래 지형이 상당 부분 깨집니다.
2016년 8월 11일부터 9월 12일까지 발굴이 진행됩니다. 면적은 2,935㎡. 생태공원으로 만들기 위한 조사가, 군사시설 아래에서 성벽 바닥을 확인한 조사입니다.
안에서 건물지와 배수시설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나온 유물은 두드린 무늬의 타날문 토기 조각과 단단하게 구운 경질 토기 조각입니다. 사람이 살던 집터까지는 복원되지 않고, 벽을 쌓던 바닥과 토기만 남은 상태입니다.
바닥에서는 기둥 구멍이 3열로 확인됩니다. 주혈은 나무 기둥을 박았던 자리입니다. 1열과 2열이 3열보다 깊습니다. 사면과 나란한 돌줄도 남아 있습니다. 토심석축이 말하는 순서, 기둥을 세운 뒤 흙과 돌로 마감하던 순서가 그 구멍에 남아 있습니다.
중랑천 서쪽에서 삼국시대 관방 유적이 확인된 것은 여기가 처음입니다. 관방은 길목과 경계를 지키려고 둔 군사 시설을 말합니다. 동쪽 능선만 보면 천 서쪽은 빈칸이었습니다. 배봉산이 그 빈칸을 채웁니다.
토심석축의 순서를 현장에 대응하면 이렇습니다. 나무 기둥을 먼저 세웁니다. 그 구멍이 주혈입니다. 여기 주혈은 3열이고, 1·2열이 3열보다 깊습니다. 깊이가 다른 이유는 기록에 없습니다. 확인된 것은 배열과 깊이 차이뿐입니다. 기둥 다음에 흙을 채우고, 바깥 면을 돌로 마감합니다. 사면과 나란한 돌줄은 그 마감이 경사면을 따라 남았다는 뜻입니다.
동쪽의 아차산 4보루, 홍련봉 보루, 시루봉 보루가 같은 기법이라면, 배봉산은 그 목록의 서쪽 끝입니다. 중랑천이 그 사이를 가릅니다. 동쪽 봉우리에서만 보면 서쪽 평지로 들어오는 길은 등 뒤가 됩니다. 배봉산 정상은 그 서쪽을 봅니다. 규모가 작고 치가 없는 것은, 동쪽의 큰 보루와 같은 돌출 방어까지 갖추진 않았다는 조사 결과입니다.
군사시설은 그 바닥 위에 나중에 앉았습니다. 2015년까지 출입이 막힌 이유는 정상에 현역 군사시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철거 과정에서 원지형이 많이 깨졌고, 그래서 건물지와 배수시설은 확인 목록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없는 것을 있었을 것으로 채우지는 않습니다. 조사는 없다고 적습니다.
대신 토기가 남습니다. 표면을 두드린 타날문 조각, 단단하게 구운 경질 조각. 기종을 복원할 만큼은 아니고, 삼국시대 토기라는 결만 남습니다. 2,935㎡는 정상부에서 그 조각과 주혈과 기저부를 같이 본 면적입니다. 조사 기간은 2016년 8월 11일부터 9월 12일까지, 한 달입니다.
쌓은 사람과 쌓은 해, 얼마나 오래 운영했는지는 기록에 없습니다. 있는 것은 기법과 위치, 그리고 발굴이 그걸 확인한 해입니다. 중랑천 서쪽에 고구려식 보루가 있는 이유는, 동쪽과 같은 축성으로 천 건너를 하나 더 뒀기 때문입니다. 그 사실이 사람에게 다시 보인 것은 군사시설이 걷힌 2016년입니다.
2017년 2월 9일,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42호로 지정됩니다. 주소는 동대문구 전농2동 배봉산 정상입니다.
이웃보다 작다는 비교는 아차산·용마산 보루군을 기준으로 합니다. 성벽이 시작되는 기저부는 그 작은 규모에도 남아 있습니다. 내부가 교란된 뒤에도 바닥의 돌줄과 기둥 구멍이 남았다는 것이, 이 유적을 관방으로 읽는 근거입니다. 고대 서울에서 삼국이 마주 보던 정황은, 중랑천 동쪽 보루만으로는 천의 한쪽이었습니다. 배봉산이 서쪽 쪽을 더합니다. 한강 유역 방어를 위해 고구려가 쌓았다고 보는 이유도 그 연결입니다. 정확한 축조 연대를 적은 문헌은 없고, 추정은 기법에서 나옵니다.
지금
전농2동 배봉산 정상에 성벽 기저부와 3열 주혈, 사면과 나란한 돌줄이 남아 있습니다. 건물지와 배수시설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중랑천 서쪽의 첫 고구려 관방은, 2016년 군사시설을 걷어 낸 2,935㎡에서 확인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