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야기
서울 노원구 중계동과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이 만나는 경계입니다. 불암산 주봉에서 남쪽으로 능선을 따라 내려가면 제2봉이 나옵니다. 높이 420.3미터. 평탄한 정상부를 옛 돌성벽이 두르고 있습니다. 성터에 서서 북쪽을 보면, 관방이라면 있어야 할 시야가 없습니다.
관방 유적은 적이 움직이는 길목을 멀리서부터 감시하고 경계하려고 짓는 자리입니다. 이 지역 관방의 핵심은 북쪽에서 남하하는 적을 막는 일이었죠. 그런데 이 성터에서 북쪽을 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불암산의 507미터 주봉이 북쪽 앞을 장막처럼 가로막기 때문입니다.
몸을 남쪽으로 돌리면 장면이 바뀝니다. 중랑구 일대와, 한강으로 이어지는 서울 동부의 넓은 들판이 발아래 열립니다. 북쪽을 보는 망루의 시야가 아닙니다. 남쪽에서 북상하거나, 남쪽 길목을 오가는 동태를 세밀하게 조망하는 시야입니다.
이 입지 때문에,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산성의 정체를 두고 여러 짐작이 오갔습니다. 땅 아래의 성벽과 유물을 파 보니 결론이 나왔습니다. 6세기 후반, 신라가 한강 유역을 확보한 뒤 조성한 관방 산성입니다. 통일신라 시대를 거쳐 후삼국 시대까지 오랫동안 쓰였습니다. 신라의 성입니다.
인근 아차산에는 고구려가 쌓은 보루가 촘촘히 남아 있습니다. 그 보루와 불암산성을 나란히 보면, 돌을 다루는 법이 다릅니다. 아차산의 고구려 보루는 비교적 납작하고 넓적한 돌을 쌓아 올린 형태입니다. 불암산성의 신라 성벽은 그보다 가파르고 정교합니다.
신라 석공은 성벽 겉면에 쓰는 면석을 다듬을 때, 세로가 긴 장방형 돌을 깎아 냈습니다. 그 돌을 가로세로 줄을 맞춰, 수직에 가깝게 가파르게 쌓았습니다. 성벽이 쉽게 허물어지지 않도록 안쪽에는 길쭉한 돌을 결대로 바짝 채워 넣었습니다. 뒷채움입니다. 면석과 뒷채움돌이 서로를 맞물리게 해, 폭우와 충격에도 쉽게 무너지지 않게 한 쌓기입니다.
둘레는 약 236미터입니다. 큰 산성이 아닙니다. 내부 면적은 약 5,321.8제곱미터입니다. 대규모 군대가 오래 머물기보다, 정예 병력이 거주하며 남쪽 길목을 감시하고 신호를 주고받기에 알맞은 크기입니다. 성의 전체 모양은 자연 지형의 곡선을 그대로 따라 돌았습니다. 위에서 보면 완전한 원, 또는 변의 길이가 서로 다른 부등변 오각형에 가깝습니다.
긴 세월에 많은 구간은 허물어져 흙에 묻혔습니다. 동쪽과 서쪽 성벽 일부에는 여전히 10단 이상 바르게 쌓인 석축이 뚜렷이 남아 있습니다.
지금 등산객이 오가는 길목은 과거 성의 문이 있었던 문지(문 터)로 추정됩니다. 정상부 북동쪽, 조금 아래 단으로 내려가면 원형으로 돌을 쌓아 올린 구조물이 보입니다. 성 안에서 생활하던 병사에게 필요했던 우물 터로 추정되는 자리입니다.
6세기 후반 한강 유역에 들어온 신라는 통일신라를 거쳐 후삼국의 혼란기까지 이 작은 산성을 포기하지 않고 고쳐 썼습니다. 북쪽의 거대한 주봉은 시야를 막는 동시에 천연의 방패가 됩니다. 제2봉에서는 남쪽 한강으로 이어지는 교통로와 평야가 보입니다. 감시의 정면이 북쪽이 아닌 이유가 이 지형입니다.
지금
불암산성은 서울특별시 노원구 중계동과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의 경계에 있습니다. 서울특별시 기념물이자 경기도 기념물로 함께 지정되어 관리됩니다.
목조로 지어졌던 원래 건물과 내부 건물지는 사라졌습니다. 남은 것은 나지막한 성벽 터와, 우물로 추정되는 석축 구조물입니다. 주말의 등산로가 문지 추정 자리를 지나갑니다.
남쪽을 보면 중랑구 일대의 들이 내려다보입니다. 지금은 도심입니다. 발굴이 밝힌 쓰임은 6세기 후반에 신라가 쌓아, 통일신라와 후삼국까지 남쪽 들판을 감시하던 관방입니다. 북쪽 507미터 주봉이 시야를 막은 제2봉이라, 성은 남쪽 한강 쪽을 향해 쌓였습니다. 둘레 236미터의 작은 성이 오래 고쳐 쓰인 이유가 그 시야입니다.
숫자로 다시 보면 이렇습니다. 성터는 노원구 중계동과 남양주시 별내면 경계, 해발 420.3미터 제2봉입니다. 북쪽 507미터 주봉이 시야를 막으므로, 열린 쪽은 중랑구와 한강 쪽 들판입니다. 발굴은 6세기 후반 신라의 축조, 통일신라와 후삼국까지의 사용을 밝혔습니다. 면석은 세로로 긴 장방형이고, 안쪽은 길쭉한 돌의 뒷채움입니다. 둘레 약 236미터, 내부 약 5,321.8제곱미터, 평면은 지형을 따른 원형 또는 부등변 오각형입니다. 동벽과 서벽 일부에 10단 이상 석축이 남았고, 등산로는 문지 추정 자리, 북동쪽 아래는 우물 터 추정 석축입니다. 서울과 경기도 기념물로 함께 지정돼 있습니다. 목조 건물지는 사라지고 성벽만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