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야기
조선 시대 정1품 최고 관아 건물이 왜 1981년에 정독도서관 부지로 쫓겨나듯 옮겨져야 했을까요?
종친부(宗親府)는 조선 왕조 역대 제왕의 어보(왕의 도장)와 어진(초상화)을 보관하고, 왕실 친척들의 관혼상제와 봉작 사무를 관장하던 최고의 관청이었습니다. 세종 12년인 1430년에 종친부라는 이름을 확정했습니다.
1866년 흥선대원군은 왕권 강화를 목적으로 종친부의 조직과 권한을 크게 늘렸습니다. 이때 중심 건물인 경근당과 고위 관리들의 집무처인 옥첩당, 그리고 이승당을 중건했습니다. 세 전각은 복도각으로 연결되어 있었고, 전체 종친부 건축군은 302칸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였습니다.
그러나 1907년 순종 융희 1년에 종친부가 폐지되면서 관할 업무가 규장각으로 넘어갔습니다. 일제강점기와 광복을 거치며 종친부의 위상은 사라졌고, 1950년대 이후에는 복도각으로 연결되어 있던 이승당마저 파괴되어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경근당과 옥첩당은 남아 1972년 5월 25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9호로 지정되었습니다.
테니스장에 밀려난 정1품 관청
1981년 8월, 삼청동 종친부 터에 자리 잡고 있던 국군기무사령부가 부지 안에 테니스장을 조성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체육시설을 만들기 위해 종친부의 중심 건물인 경근당과 옥첩당을 철거해 정독도서관 부지로 옮겨 지었습니다.
조선 왕실의 으뜸 관아 건물이 군부 부지 내 테니스장 건설에 밀려 제자리를 빼앗긴 순간이었습니다.
경근당과 옥첩당은 원래의 위치에서 떨어진 정독도서관 마당 한쪽에 놓인 채 32년이라는 긴 세월을 버텨야 했습니다.

32년 만에 되찾은 본래의 자리
변화의 계기는 2013년에 찾아왔습니다. 기무사가 이전하고 해당 부지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건립하는 사업이 추진되면서, 경근당과 옥첩당을 원래 있던 자리로 돌려놓는 이전 복원 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복원 과정에서는 해체해 보관했던 기존 부재를 최대한 다시 사용하는 방식으로 역사적 진정성을 지켰습니다. 경근당 정면의 넓은 월대와 다듬은 돌로 만들어진 기단 및 초석, 경복궁 전각과 유사한 공포 조형이 본래의 터 위에서 다시 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원래 터로 돌아온 경근당과 옥첩당은 19세기 중앙 관아 건축의 구조와 배치를 잘 보여주는 가치를 인정받아, 2021년 12월 27일 보물로 승격 지정되었습니다.
지금
서울특별시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경내로 들어서면 현대적인 미술관 건물 사이에 우뚝 선 경근당과 옥첩당을 만나게 됩니다. 경근당 정면의 넓은 월대와 다듬은 돌 기단은 경복궁 전각에 비견되는 격식을 잘 보여줍니다.
군부 테니스장 건설로 32년 동안 자리를 비워야 했던 전각은 1866년 중건되었던 원래의 위치에서 관람객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