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야기
1984년 2월, 서울 종로구 소격동의 국군보안사령부(옛 기무사) 뜰에서 중장비가 땅을 파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지하 3m 깊이에 도달했을 때 흙 속에서 정교하게 깎인 화강암 덩어리들이 괭이와 포크레인 끝에 걸려 나왔습니다.
상수도가 없던 시절 서울 도성 안의 물줄기를 책임지던 관청 우물의 상부 깃돌이었습니다.
땅속 3m에 묻혀 있던 관청의 물줄기
발견된 우물은 보통 우물과 형태가 달랐습니다. 커다란 화강암 두 덩이를 둥글게 이어 붙여 원형 우물 입구를 만들었습니다. 상부 네 모서리에는 튀어나온 조각이 돋아나 있었습니다.
이 구조는 '조출(彫出)'이라 불리는 기법입니다. 돌 표면의 특정 부위를 돋아나게 깎아내는 장식 겸 기능적 가공 방식을 뜻합니다. 네모나게 돋아난 모서리는 동서남북 방향을 가리키는 괴임대 역할을 했습니다.
이곳에 정한수를 떠놓고 안녕을 기원하거나 물동이를 잠시 올려두는 용도로 쓰였습니다. 이러한 형태의 우물은 창덕궁이나 운현궁 이로당 후원 같은 왕실 관련 공간에서만 발견되는 희귀한 양식입니다.
우물이 파묻혀 있던 자리는 조선 시대 종친부(宗親府)가 있던 터였습니다. 종친부는 국왕의 친척과 관련한 사무를 맡아보던 관청입니다. 경복궁 동편에 자리했던 이 관청은 개화기와 일제강점기, 현대사를 거치며 건물들이 헐리고 군사 시설이 들어섰습니다. 그 과정에서 관청의 생활용수를 공급하던 우물도 흙 속에 파묻혔던 겁니다.

1984년 가을, 소격동으로 옮겨 쌓다
1984년 10월 7일, 발굴된 우물돌을 끌어올려 원래 위치에서 가까운 소격동 현 위치로 옮기는 복원 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지하 3m에서 꺼낸 화강암 깃돌을 상부에 올리고, 우물 내부는 자연석을 둥글게 쌓아 올려 새로 조성했습니다. 우물 내부 바닥에는 발굴 당시 함께 나온 물받이 돌 구조물 1점도 놓았습니다. 원래의 지하 수원은 끊어졌지만, 우물 구조물의 형태는 이렇게 다시 세상 밖으로 나왔습니다.
우물 바로 옆에는 나이가 약 300년으로 추정되는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습니다. 종친부 관청이 운영되던 시절 정자수로 심겼던 나무입니다. 우물은 흙 속에 묻혀 잊혔지만, 소나무는 그 지상에서 자라며 아래에 묻힌 우물의 위치를 기억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이 우물터는 2002년 3월 15일 서울특별시 문화재자료 제13호 '구종친부터 우물'로 지정되었습니다. 이후 2008년 10월 30일 명칭이 정리되어 '종친부 터 우물'이라는 이름을 확정받았습니다.
지금
현재 서울 종로구 소격동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인근 야외에 우물이 복원되어 있습니다. 우물 상부를 이루는 화강암 두 덩이의 연결 부위와 네 귀퉁이에 돋아난 조출 구조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물 내부 안쪽 바닥에는 과거 물받이 돌로 쓰였을 석조물 1점이 놓여 있습니다. 바로 옆에는 약 300년 동안 이 자리를 지켜본 소나무가 함께 서 있어, 1984년 땅속에서 발굴되어 이전 복원된 관청 우물의 흔적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