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야기
100년도 더 전에 붉은 벽돌과 콘크리트로 땅속에 만든 배수로가 어떻게 지금까지 서울의 빗물과 하수를 흘려보내고 있을까요?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남대문로 지하에는 대한제국 말기에서 일제강점기 초기에 축조된 지하 물길이 원형을 간직한 채 파묻혀 있습니다.
조선의 개천 회현동천, 땅속으로 들어간 까닭
조선 시대 서울의 물길은 지상에 개방된 형태였습니다. 돌로 호안 석축을 쌓고 개천에 물이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두는 방식이었습니다. 남산에서 내려와 남대문로를 지나 청계천으로 합류하던 회현동천 역시 땅 위로 흐르던 물길이었습니다.
하지만 20세기 초 도시화와 위생 관리가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습니다. 개방된 하천에 오물이 쌓이고 전염병 위험이 커지자, 물길을 땅속으로 가두는 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를 암거화(暗渠化)라고 부릅니다. 지상에 노출된 개천을 땅속 구조물 안에 묻고 그 위를 도로로 만드는 토목 작업입니다.
1907년 벽돌을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탁지부 연와제조소가 출범했습니다. 같은 해 한성위생회가 등장하면서 근대적인 지하 배수로를 쌓을 재료와 명분이 갖추어졌습니다. 조선의 개천이었던 회현동천은 이때 붉은 벽돌과 콘크리트에 감싸여 어두운 지하 속으로 내려앉았습니다.
적벽돌 37장과 콘크리트가 만난 구조
남대문로 지하배수로는 1907년에서 1915년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배수로 관로의 구조를 살펴보면 당시 기술자들이 마모를 막기 위해 얼마나 고민했는지 드러납니다.
롯데백화점 부근에서 남대문로9길로 이어지는 하류구간은 지면에서 약 1.15~1.24m 아래에 위치합니다. 이 관로의 안쪽 지름은 1.47m입니다. 천장 상부는 붉은 벽돌 37장을 아치형으로 정교하게 짜 맞추었습니다. 물이 직접 닿고 깎여 나가는 하부는 잔자갈을 섞은 콘크리트로 채워 단단히 마감했습니다.
한진건물 앞 상류구간 역시 상부는 벽돌 34장, 하부는 콘크리트를 혼합해 만들었습니다. 배수로 측면에는 벽돌을 길이쌓기와 마구리쌓기로 번갈아 쌓아 만든 박스 형태의 맨홀(820x710mm)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소광통교 구간으로 들어서면 분위기가 또 달라집니다. 길이 27.3m, 폭 6.0m의 이 구간은 가로·세로 300mm 크기의 견치석(개이빨 모양으로 다듬은 돌)을 6단으로 들여쌓아 석축을 완성했습니다. 남대문로 하류구간과 만나는 입구는 사다리꼴 석재 18개를 뒤로 기울여 쌓아 지름 1.53m의 원형 홍예 입구를 만들었습니다. 석재와 벽돌이 이물감 없이 자연스럽게 물려 있어 같은 시기에 조성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110년 동안 멈추지 않은 현역 배수로
1918년 경성 제1기 하수개수공사가 시작되면서 배수로의 재료는 철근콘크리트관으로 바뀌었습니다. 남대문로 지하배수로는 적벽돌과 콘크리트를 혼합해 쓰던 짧은 과도기의 토목 기술을 보여주는 희귀한 유산입니다.
1980년대 지하철 2호선 공사를 진행하면서 배수로 중 약 44m가 콘크리트 흄관으로 교체되었습니다. 명동지하상가를 만들 때도 약 112m 구간이 현대식 하수관으로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394m 구간은 훼손되지 않은 채 110여 년 전 모습 그대로 남았습니다.
100년도 더 전에 땅속에 묻힌 이 배수로가 지금까지 작동하는 이유는 상부의 벽돌 아치 구조와 하부의 콘크리트 마감이 수압과 마모를 견뎌냈기 때문입니다. 박물관 전시장에 들어간 유물이 아니라, 지금도 서울 지하에서 하수를 내보내는 현역 구조물로 작동하고 있는 셈입니다.
지금
한국은행 사거리에서 을지로입구로 이어지는 남대문로를 걸을 때, 발밑 1.1m 아래를 상상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곳에는 1900년대 초에 다듬은 18개의 석재 입구와 견치석 석축, 붉은 벽돌 아치가 가만히 놓여 있습니다.
남대문로 지하배수로는 전통적인 석축 기술에서 현대식 철근콘크리트 하수관으로 넘어가는 단계를 보여주는 토목 유산입니다. 2014년 7월 3일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39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오늘도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빌딩 숲 아래에서, 붉은 벽돌 물길은 110년 전과 변함없이 빗물을 흘려보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