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침대 밑에서 나간 독립선언서

서울 앨버트 테일러 가옥 · 행촌동 딜쿠샤, 1919년의 타전과 그 뒤의 추방

1919년, 세브란스 병원 침상에 있던 3.1독립선언서는 갓난아이의 침대 밑을 거쳐 외신으로 나갔습니다.
서울 앨버트 테일러 가옥(딜쿠샤)
서울 앨버트 테일러 가옥(딜쿠샤)
출처: 본 저작물은 '국가유산청'에서 작성하여 공공누리 제1유형으로 개방한 '서울 앨버트 테일러 가옥(딜쿠샤)'을 이용하였으며, 해당 저작물은 '국가유산청, www.khs.go.kr'에서 무료로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

이야기

종로구 행촌동 언덕의 붉은 벽돌집. 이름은 딜쿠샤입니다. 선언서는 왜 이 집 주인 아들 침대 밑에 있었을까요.

집 주인은 미국 AP통신 특파원 앨버트 테일러(Albert Wilder Taylor)와 아내 메리 린리 테일러(Mary Linley Taylor)입니다. 두 사람이 살기 위해 지은 집입니다.

앨버트 테일러는 1910년부터 서울에 살았습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거리에서는 대한독립만세가 이어졌습니다.

그때 메리 린리 테일러는 서울 세브란스 병원에서 아들을 낳은 직후였습니다. 앨버트 테일러는 그 병원 침상에 숨겨져 있던 3.1독립선언서를 발견했습니다. 감시와 수색이 닿을 수 있는 서류였습니다.

그는 선언서를 갓 태어난 아들의 침대 밑에 숨겼습니다. 그 서류는 그의 손을 거쳐 외신으로 타전되었습니다. 조선의 독립선언이 세계 언론에 전달된 경로가 여기 있습니다.

타전은 선언서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제암리 학살도 취재해 세계에 알렸습니다. 일제 군경이 주민들을 제암리 교회에 가두고 불을 지른 일이었습니다. 그는 취재에 머물지 않고 조선의 항일독립운동을 도왔습니다.

딜쿠샤
딜쿠샤
출처: 위키백과「딜쿠샤」

1923년부터 두 사람은 이 언덕에 집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세브란스 병원의 선언서와 제암리 보도 뒤에 올린 집입니다.

보도 뒤의 압박은 수감으로 이어졌습니다. 앨버트 테일러는 서대문형무소에 6개월 갇혔습니다. 독립운동가가 갇히던 그 형무소에, 외국인 기자도 수감된 것입니다.

수감이 끝난 뒤에도 탄압은 계속되었습니다. 그는 강제 추방되었습니다. 서울의 집과 조선을 두고 고국으로 돌아갔습니다. 1948년, 미국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지금

행촌동 언덕의 딜쿠샤는 그 벽돌집 그대로 서 있습니다.

1919년의 선언서는 세브란스 병원 침상에서 발견되어, 아기 침대 밑에 숨겨진 뒤 외신으로 나갔습니다. 제암리 학살 보도가 그 뒤를 이었습니다. 집은 1923년에 짓기 시작했습니다. 주인은 서대문형무소 6개월을 거쳐 추방되었고, 1948년 미국에서 사망했습니다. 언덕에 남은 것은 그 순서의 집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앨버트 테일러는 3.1독립선언서를 어떻게 전했나요?
세브란스 병원 침상에서 발견한 선언서를 갓 태어난 아들의 침대 밑에 숨긴 뒤, 외신으로 타전했습니다.
그가 외신으로 알린 일은 무엇인가요?
1919년 3.1독립선언과 제암리 학살입니다. 제암리에서는 일제 군경이 주민들을 교회에 가두고 불을 질렀습니다.
그 뒤 테일러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요?
서대문형무소에 6개월 수감된 뒤 강제 추방되었습니다. 1948년 미국에서 사망했습니다.
딜쿠샤는 언제 짓기 시작했나요?
앨버트 테일러와 메리 린리 테일러가 1923년부터 행촌동 언덕에 짓기 시작한 집입니다.

같이 보면

출처

국가유산청 문화재공간정보, 국가유산청 오픈A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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