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에 창고가 된 예배당, 54주년에 다시 문을 열다

서울 해병대사령부 초대교회 · 용산의 붉은 전돌

용산 옛 방위사업청 부지 안, 빌딩 사이의 단층 붉은 전돌 건물은 1959년 12월 31일에 완공된 예배당입니다. 그 예배당이 수십 년 창고였던 이유는 글의 끝에 있습니다.
서울 해병대사령부 초대교회
서울 해병대사령부 초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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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1949년 4월 15일, 경상남도 진해 덕산 비행장에서 대한민국 해병대가 창설되었습니다. 바다와 육지를 오가는 부대였고, 장병에게는 전장과 훈련이 이어졌습니다. 신앙을 모을 자리가 필요했고, 한국전쟁이 진행 중이던 1951년 3월 12일 장병들의 신앙을 기둥 삼아 ‘해병대 초대교회’가 문을 열었습니다.

전쟁이 일단락된 뒤 해병대사령부는 수도 서울의 경비와 군의 전열을 정비하기 위해 지금의 방위사업청 부지로 옮겼습니다. 교회도 사령부를 따라 서울 용산으로 왔지만, 전쟁 직후 이 터에는 정식 예배당 건물이 없었습니다.

처음 세워진 교회는 야전용 천막을 덮어 만든 ‘장막교회’였습니다. 장병들은 매주 모여 기도와 예배를 이어 갔습니다. 얼마 뒤 천막을 거두고, 반통형의 곡면 철판을 이어 붙인 임시 막사, 곧 ‘퀀셋(Quonset) 교회’로 고쳤습니다. 비바람은 가렸으나, 정식 신앙 공간으로 부르기에는 임시 거처였습니다.

사령부가 이전한 뒤 몇 해가 지나, 1959년 12월 31일 그해 마지막 날에 붉은 전돌을 올린 영구 예배당이 완공되었습니다. 오늘 남아 있는 초대교회의 성전이 이 건물입니다. 해병대 장병과 군 가족은 임시 거처를 벗어나 이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서울 해병대사령부 초대교회
서울 해병대사령부 초대교회
출처: 위키백과「서울 해병대사령부 초대교회」

1973년 10월 10일, 군 조직 개편으로 해병대사령부가 해체되었습니다. 지휘부가 사라지고 장병들이 각지로 흩어지면서, 사령부 안마당의 이 교회 건물은 주인과 기능을 잃었습니다. 예배당에서 나오던 찬송과 기도는 멈추었습니다.

사령부 부지를 맡은 수도방위사령부는 빈 공간을 다른 용도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예배를 드리던 의자와 단상은 치워졌고, 그 자리에 군수 물품과 서류 상자가 쌓였습니다. 예배당은 수십 년 동안 창고로 쓰였습니다. 벽면은 조금씩 변형되었고, 해병대 장병의 손길이 닿았던 건물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멀어졌습니다.

그 침묵이 30년 이어진 뒤, 2003년 4월 7일 해병대 창설 제54주년을 맞아 창고로 변형되고 훼손되었던 옛 교회를 예배당으로 되돌리는 중수 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쌓여 있던 창고 물품을 내어놓고 닫혀 있던 문을 열어, 30년 만에 예배당의 기능을 되찾았습니다.

다시 문을 연 초기에는 이전의 역사를 다 담지 못한 채 ‘방패교회’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2005년에 이르러 이 건물의 본래 역사와 정체성을 인정받아, 처음 이름인 ‘해병대사령부 초대교회’를 되찾았습니다.

날짜를 한 줄로 다시 놓으면 이렇습니다. 1949년 4월 15일 진해 덕산 비행장 창설, 1951년 3월 12일 초대교회 개설, 한국전쟁 뒤 사령부와 함께 현 방위사업청 부지로 이전, 장막교회에서 퀀셋 교회로, 1959년 12월 31일 붉은 전돌 완공. 그 예배당에서 해병대 장병과 군 가족이 예배를 드렸습니다. 1973년 10월 10일 해병대사령부가 해체되자 수도방위사령부가 의자와 단상을 치우고 군수 물품과 서류 상자를 쌓았습니다. 예배당은 수십 년 창고로 남았고 벽면은 변형되었습니다. 2003년 4월 7일 창설 제54주년 중수로 창고 물품을 내어놓고 문을 다시 열었으며, 방패교회라는 이름을 거쳐 2005년 해병대사령부 초대교회로 돌아왔습니다.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 단층 건물은 야전 장막, 철판 막사, 1959년 벽돌 성전이라는 세 단계를 한 터에 남기고 있습니다. 해병대는 바다와 육지를 오가며 험한 곳에 먼저 들어가는 부대였고, 1951년의 교회는 그 장병의 신앙을 모으려 연 자리입니다. 전쟁 직후 용산에는 번듯한 예배당이 없어 천막과 철판 막사를 거쳤고, 1959년 마지막 날에야 전돌 건물이 섰습니다. 1973년 해체 뒤 수도방위사령부 창고가 된 그 방이, 2003년 중수와 2005년 개명으로 다시 초대교회의 이름을 달았습니다. 용산의 붉은 전돌이 창고였던 까닭은 사령부 해체이고, 다시 교회가 된 까닭은 창설 54주년의 중수입니다.

지금

서울 해병대사령부 초대교회는 대한민국 군종 역사와 해병대의 역사를 전하는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창설 초기의 야전 장막에서 퀀셋 막사를 거쳐, 1959년에 세운 붉은 벽돌 건물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1973년 10월 10일 해병대사령부 해체와 함께 예배당이 수도방위사령부의 창고가 된 자리입니다. 2003년 4월 7일 창설 54주년 중수로 예배당이 되었고, 방패교회로 불리던 이름을 2005년에 해병대사령부 초대교회로 되돌렸습니다. 용산의 이 단층 건물이 창고였다가 다시 교회가 된 이유가 그 두 날짜에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해병대 초대교회는 처음부터 지금의 용산 위치에 있었나요?
아닙니다. 1949년 진해에서 해병대가 창설된 후 1951년 3월 12일 초대교회가 시작되었으며, 한국전쟁 직후 사령부가 서울 용산 부지로 이전하면서 장막교회와 퀀셋교회를 거쳐 1959년 12월 31일 영구 건물로 건립되었습니다.
왜 오랜 기간 예배당이 아닌 창고로 사용되었나요?
1973년 10월 10일 해병대사령부가 해체되면서 교회의 기능을 상실하였고, 이후 수도방위사령부의 창고 등 다른 용도로 전용되어 수십 년간 사용되었습니다.
언제 본래의 이름과 예배당 기능을 되찾았나요?
2003년 4월 7일 해병대 창설 제54주년을 맞아 건물을 중수하여 예배당으로 다시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방패교회로 불리다 2005년에 해병대사령부 초대교회라는 정식 명칭을 회복했습니다.

같이 보면

출처

국가유산청 문화재공간정보, 위키백과「서울 해병대사령부 초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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