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야기
아파트 베란다에서 불과 10여m 떨어진 경사지 구덩이 속에 높이 16m의 거대한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의 나이를 1,000살이라고 불러왔지만, 학자들이 측정한 실제 나이는 약 250살입니다. 1,000년의 전설과 250년의 실제 수명이 어떻게 한 자리에서 겹치게 되었을까요?
지팡이 전설과 조선 후기의 후계목
이곳에는 고려시대 강감찬(947~1031) 장군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강감찬 장군이 이 길을 지나다가 땅에 지팡이를 꽂아 두었는데, 그 지팡이에서 싹이 터 커다란 굴참나무로 자라났다는 전설이었죠.
그러나 나무의 수명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고려시대에 싹튼 원래의 나무는 세월이 흘러 결국 죽어 사라졌습니다.
약 250년 전인 조선 후기, 죽은 나무가 서 있던 바로 그 자리에 새로운 싹이 터 올랐습니다. 이전 나무의 혈통과 전설을 이어받아 자라난 나무를 후계목이라고 부릅니다. 지금 우리가 보는 굴참나무가 바로 이 후계목입니다.
마을 주민들은 새로 자라난 굴참나무를 마을의 신령한 당산목으로 모셨습니다. 매년 정월 대보름이 되면 나무 아래 모여 마을의 평안을 비는 제사를 올렸습니다. 주민들이 주기적으로 막걸리를 부어주며 정성껏 보살핀 덕분에 나무는 가슴높이 둘레 3.6m까지 크게 자라났죠. 가지는 동쪽으로 9.8m, 서쪽으로 10.1m, 남쪽으로 7.7m, 북쪽으로 7m씩 넓게 퍼져 나갔습니다.

흙에 묻힌 가지와 아파트 사이의 거목
마을의 풍경이 급격히 바뀐 것은 현대에 이르러서였습니다. 신림동 난곡사거리 남쪽 일대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기 시작했습니다.
2차 건영아파트 단지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공사 현장의 땅을 평평하게 고르기 위해 나무 주변에 흙과 자갈을 쌓았습니다. 나무 주변 지표면을 흙으로 덮는 복토(흙덮기) 작업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주변 지대가 높게 쌓이면서 나무는 상대적으로 낮아진 경사지 구덩이 속에 갇힌 형태가 되었습니다. 아파트 건물과 나무 사이의 거리는 불과 10여m에 불과합니다.
복토 작업의 여파로 나무의 가장 아래쪽에 있던 가지는 지면에서 불과 1m 높이까지 바짝 낮아졌습니다. 동쪽으로 뻗은 가지 일부는 썩어 외과 수술을 받았고, 무거워진 가지를 받쳐주는 지지용 기둥이 설치되었습니다.
하지만 굴참나무는 말라 죽지 않았습니다. 두꺼운 코르크 껍질을 두른 줄기는 단단히 자리를 지켰으며, 매년 10월이면 어김없이 굵은 도토리를 틔워내고 있습니다. 1,000년 전 지팡이 전설에서 출발한 생명력이 250년 된 후계목을 거쳐 오늘날 아파트 단지 한가운데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지금
서울 관악구 신림동 난곡사거리 남쪽 2차 건영아파트 단지 내에 들어서면, 깊게 패인 경사지 속에서 원뿔 모양을 유지하고 있는 굴참나무를 볼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천연기념물 제271호로 지정된 이 나무는 지상 1m 높이까지 바짝 내려앉은 가지와 외과 수술을 받은 흔적을 몸에 남기고 있습니다.
아파트 베란다 바로 앞에서 두꺼운 코르크 껍질을 넓게 펼친 채, 매년 가을마다 굵은 도토리를 바닥으로 떨어뜨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