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수대

한말·일제지금은 볼 수 없음

[1920년대] 일본인 사업가 기노시타 사카에(木下榮)가 흑석동 한강변 언덕(서달산 자락)에 '맑은 물이 흐르는 경치 좋은 곳'이라는 뜻으로 이름 붙인 별장 겸 유원지. 1929년 명수대토지경영사무소를 세워 이 일대에 대규모 교외 주택지('명수대 문화주택')를 개발·분양했고, 약 5천 평 규모의 일본식 연못 '명수호'와 유원지를 함께 조성해 130여 세대의 일본인이 거주했다. 개발 구역은 지금의 동양중학교 인근(1·2차)부터 흑석3동 일대(3차)까지 넓게 걸쳐 있었다. 광복 후 별장은 헐리고 연못은 메워져 시장이 들어섰다. 1947년에는 이 일대에 '영등포구 명수대남동'이라는 행정동이 설치되기도 했으나 1955년 흑석동으로 통합됐다. 지금은 '명수대현대아파트' 등 몇몇 이름에만 일제강점기 개발의 흔적이 남아 있다.

큐레이션

지금 이 자리

명수대현대아파트 등 지명으로만 남음(연못 자리는 이후 시장으로 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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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근처의 다른 기억

위도 37.5078753 · 경도 126.9670926

출처: 디지털동작문화대전「명수대 지명 유래」·「전원주택지로서 '명수대'의 등장과 땅투기의 시작」·「명수대 문화주택」, 중앙대학교 신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