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관왕묘
조선일부 남음1979년 사라짐
정유재란 때인 1598년(선조 31), 명나라 유격장군 진인(陳寅)이 자신이 총탄을 맞고도 무사했던 것을 관우의 영험 덕분이라 여겨 숭례문(남대문) 밖 산기슭에 세운 사당이다. 서울 4대 관왕묘 중 가장 오래됐고, 조선통신사가 일본으로 떠나기 전 반드시 참배하고 갔던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1908년 국가 제향이 폐지된 뒤, 같은 시기 사라진 북관왕묘·서관왕묘와 달리 완전히 소멸하지 않고 명맥을 이었다. 1913년 매각 당시 중국인·일본인·한국인을 상대로 한 개인 경매에 부쳐졌고, 훗날 관성묘유지재단 이사장의 부친이 사들여 개인 소유로 관리한 것으로 전해진다. 1952년 한국전쟁 중 화재로 소실됐다가 1957년 같은 자리에 재건됐고, 1979년 도동지구 재개발로 지금의 동작구 사당동으로 건물째 옮겨졌다. 그렇게 40년 넘게 이어지던 이 사당은 2020년 상반기 사당동에서마저 해체됐고, 새 복원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큐레이션
지금 이 자리
원위치는 용산구 후암동 주택가로 개발됨. 건물은 1979년 동작구 사당동(사당로23길 278)으로 이전 재건됐으나, 2020년 상반기 그마저 해체돼 복원 예정지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로 전해진다(단일 출처, 재확인 필요)
이 근처의 다른 기억
출처: 위키백과, 디지털동작문화대전, 언론 보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