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옥수동과 압구정동 사이, 지금은 그냥 한강일 뿐인 자리에 예전에는 섬이 있었습니다. 이름은 저자도(楮子島). 중랑천이 한강과 만나는 곳에 모래가 쌓여 생긴 섬으로, 대동여지도에도 그려져 있을 만큼 오래된 지형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이 섬에 마을까지 있었습니다.
1925년 을축년 대홍수를 겪으며 저자도는 사람이 살지 않는 모래섬으로 바뀝니다. 그렇다고 작은 섬은 아니었습니다. 1930년대 기록을 보면 동서 길이 2km, 남북 폭 885m, 넓이는 약 118만㎡에 이르렀습니다. 여의도와 비교해도 크게 밀리지 않는 규모입니다.
이 큰 섬이 통째로 사라진 건 순전히 다른 동네를 만들기 위해서였습니다. 1970년 정부로부터 공유수면 매립 허가를 받은 현대건설이 저자도의 흙과 모래를 퍼내 압구정동에 택지를 조성하는 데 썼습니다. 섬 하나를 파내서 다른 동네의 땅을 돋운 셈입니다. 이 작업은 1972년까지 이어졌고, 그해 저자도는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지금 압구정 아파트 단지가 서 있는 땅 일부에는, 한때 섬이었던 흙이 섞여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지금
섬이 사라진 자리는 오랫동안 그냥 강물이었습니다. 2013년 성동구가 이곳에 옛 저자도의 존재를 알리는 안내 표지판을 세웠습니다. 지나가는 사람 누구도 알아채지 못하는 강물 위에, '여기 섬이 있었다'는 문장 하나가 놓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저자도를 만든 것도, 없앤 것도 결국 퇴적과 채취였습니다. 섬을 없앤 지 약 50년이 지난 2023년 무렵, 중랑천에서 계속 흘러내려온 모래가 다시 쌓이면서 같은 자리에 모래섬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가마우지, 고니, 갈매기, 왜가리, 원앙 같은 새들도 돌아왔습니다. 사람이 나서서 되살린 것이 아니라, 강이 반세기에 걸쳐 스스로 다시 채워 넣은 셈입니다.
지도에서 이 핀을 누르면, 지금은 강물만 보이는 자리에 예전엔 마을이 있었고, 그 마을이 사라진 자리에 아파트가 들어섰고, 그 아파트를 짓느라 파낸 자리에 다시 섬이 돋고 있다는 세 겹의 시간이 겹칩니다. 같은 자리, 다른 기억 — 이곳은 그 기억이 강물의 속도로 다시 쓰이고 있는 드문 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