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야기
1950년 6.25전쟁 당시 북한군이 진관사를 점령하고 국군과 유엔군의 공격이 이어지면서 사찰 내 거의 모든 전각이 불에 탔습니다.
하지만 폭격과 화마 속에서도 소실을 면하고 온전히 살아남은 전각은 단 3곳이었습니다.
나한전, 독성각, 그리고 칠성각이었습니다.
사찰의 대웅전을 비롯한 대형 전각들이 모두 잿더미가 되었지만, 정면 3칸짜리 작은 칠성각은 건립 당시 모습 그대로 전쟁을 견뎌냈습니다.
이 전각이 처음 들어선 해는 대한제국 시기인 1907년(융희 1년)이었습니다.
진관사 나한전 옆에 세워진 칠성각은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목조 건물입니다.
당시 목수들은 외벌대 기단을 쌓고 사각형 초석 위에 사각 기둥을 올려 민도리 형식으로 건물을 지었습니다.
지붕은 맞배지붕으로 만들되 정면 처마는 겹처마, 후면 처마는 홑처마로 다르게 구성했습니다.
건물 양측면에는 특이한 벽이 하나 설치되었습니다. 바로 화방벽(火防壁)입니다.
화방벽은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 서울과 경기 지역 사찰에서 자주 나타나는 건축 기법입니다.
화재가 났을 때 불길이 목조 건물 전체로 옮겨붙는 것을 막기 위해 벽체 하부에 돌과 벽돌을 높게 쌓아 올린 구조입니다.
칠성각은 불단이나 보살단이 아닌 신중단(神衆壇)에 속하는 건축물입니다.
신중단은 칠성이나 호법신 등 사찰을 수호하는 신들을 모시는 영역을 뜻합니다.
현재 서울 시내에 남아있는 신중단 건물 가운데 건립 연대가 밝혀진 것으로는 이 칠성각이 가장 오래되었습니다.
건물 내부 안쪽 벽 불단에는 칠성도와 석불좌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 곁에는 명호스님의 영정이 함께 봉안되어 있습니다.
천정은 격자 모양의 우물천정이며, 굵직한 대들보 2개가 대공을 사이에 두고 육중한 지붕 하중을 받치고 있습니다.
문지방을 쉽게 오르내릴 수 있도록 창호 앞에 디딤돌을 마련해 둔 점도 당시의 행동 양식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흔적입니다.
전쟁이 끝난 뒤 칠성각은 100여 년 전 창건 당시의 원형을 비교적 잘 유지한 상태로 남아있었습니다.
건물 크기와 수법 면에서 대형 문화재는 아니었지만, 한말 사찰 건축의 지역적 특성과 전쟁을 버텨낸 역사성을 인정받았습니다.
2006년 10월 19일, 진관사 칠성각은 서울특별시 문화재자료 제33호로 지정되었습니다.
6.25전쟁의 거센 불길 속에서도 살아남은 이 작은 전각은 오늘날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신중단 건물이라는 명표를 달고 서 있습니다.
지금
진관사 나한전 옆으로 가면 측면에 화방벽을 두른 정면 3칸의 칠성각을 볼 수 있습니다.
건물 문지방 앞에 놓인 디딤돌과 겹처마 아래의 사각형 기둥은 1907년 건립 당시의 민도리 양식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내부 불단에는 석불좌상과 칠성도, 명호스님의 영정이 여전히 한자리에 봉안되어 있습니다.
6.25전쟁의 잿더미 속에서 살아남은 단 3곳의 전각 중 하나로, 오늘날 서울 시내 현존 가장 오래된 신중단 건축물로 보존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