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야기
1908년, 황실 칙령 제50호 하나로 도성 곳곳에 따로 떨어져 있던 사당 다섯 곳이 육상궁 한뜰로 모였습니다.
당시 대한제국 황실은 황실 제례를 효율화하고 축소하는 방침을 세웠죠. '향사이정(亭祝釐正)에 관한 건'이라는 이름의 칙령에 따라, 각지에 분산되어 있던 후궁들의 사당을 한곳으로 합치기로 정했습니다.
조선 왕실에서 왕을 낳았지만 정식 왕비(정비)에 오르지 못한 후궁의 신위는 국왕과 왕비만 들어갈 수 있는 종묘에 모실 수 없었습니다. 신위란 죽은 사람의 위패를 뜻합니다. 이 때문에 경종의 생모 희빈 장씨의 대빈궁, 진종의 생모 정빈 이씨의 연호궁, 장조(사도세자)의 생모 영빈 이씨의 선희궁, 순조의 생모 수빈 박씨의 경우궁, 원종의 생모 인빈 김씨의 저경궁은 도성 내 각기 다른 자리에 따로 세워져 제사를 받아왔습니다.
1908년 이 흩어진 사당들의 신위가 영조의 생모 숙빈 최씨를 모신 육상궁 경내로 한꺼번에 옮겨왔습니다.

사당 건물이 한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면서 각 사당의 신위도 정돈되었습니다. 육상궁 건물에는 영조의 생모 숙빈 최씨와 진종의 생모 정빈 이씨의 연호궁 신위가 함께 모셔졌습니다. 선희궁과 경우궁 신위 역시 한 건물에 합설되었고요.
이어 1929년에는 고종의 후궁이자 영친왕의 생모인 순헌귀비 엄씨의 덕안궁 신위까지 이곳으로 옮겨왔습니다.
이로써 왕을 낳은 일곱 후궁의 신위를 한곳에서 제사 지내는 칠궁(七宮)의 체제가 비로소 완결되었습니다. 왕비가 되지 못한 어머니들이 왕실 제전 개편이라는 역사적 전환 속에서 한 마당 아래 모이게 된 셈입니다.
지금
육상궁은 원래 경복궁 후원 영역에 속했으나 청와대가 들어서고 경복궁 담장이 축소되면서 궁궐 밖 독립된 공간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1968년 1·21 사태 이후 Security 구역으로 지정되어 34년간 일반인의 출입이 완전히 금지되었죠.
2001년 11월말부터 부분적으로 관람객을 맞아 현재는 예약을 통해 둘러볼 수 있습니다.
낮으막한 담장 안에는 동쪽부터 연호궁·육상궁, 덕안궁, 경우궁·선희궁, 대빈궁, 저경궁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으며, 우물인 냉천과 냉천정, 재실이 당시 이설된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