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년 황실 칙령으로 한곳에 모인 일곱 어머니의 집

도성 전체에 흩어졌던 왕 친모의 사당이 육상궁에 모여 칠궁이 된 역사

1908년 황실 제전 축소 결정에 따라 도성 곳곳의 사당들이 육상궁 한 울타리 안으로 이전되며 오늘의 칠궁이 완성되었습니다.
육상궁
육상궁
출처: 위키백과「육상궁」

이야기

1908년, 황실 칙령 제50호 하나로 도성 곳곳에 따로 떨어져 있던 사당 다섯 곳이 육상궁 한뜰로 모였습니다.

당시 대한제국 황실은 황실 제례를 효율화하고 축소하는 방침을 세웠죠. '향사이정(亭祝釐正)에 관한 건'이라는 이름의 칙령에 따라, 각지에 분산되어 있던 후궁들의 사당을 한곳으로 합치기로 정했습니다.

조선 왕실에서 왕을 낳았지만 정식 왕비(정비)에 오르지 못한 후궁의 신위는 국왕과 왕비만 들어갈 수 있는 종묘에 모실 수 없었습니다. 신위란 죽은 사람의 위패를 뜻합니다. 이 때문에 경종의 생모 희빈 장씨의 대빈궁, 진종의 생모 정빈 이씨의 연호궁, 장조(사도세자)의 생모 영빈 이씨의 선희궁, 순조의 생모 수빈 박씨의 경우궁, 원종의 생모 인빈 김씨의 저경궁은 도성 내 각기 다른 자리에 따로 세워져 제사를 받아왔습니다.

1908년 이 흩어진 사당들의 신위가 영조의 생모 숙빈 최씨를 모신 육상궁 경내로 한꺼번에 옮겨왔습니다.

선희궁
선희궁
출처: 본 저작물은 '국가유산청'에서 작성하여 공공누리 제1유형으로 개방한 '선희궁'을 이용하였으며, 해당 저작물은 '국가유산청, www.khs.go.kr'에서 무료로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

사당 건물이 한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면서 각 사당의 신위도 정돈되었습니다. 육상궁 건물에는 영조의 생모 숙빈 최씨와 진종의 생모 정빈 이씨의 연호궁 신위가 함께 모셔졌습니다. 선희궁과 경우궁 신위 역시 한 건물에 합설되었고요.

이어 1929년에는 고종의 후궁이자 영친왕의 생모인 순헌귀비 엄씨의 덕안궁 신위까지 이곳으로 옮겨왔습니다.

이로써 왕을 낳은 일곱 후궁의 신위를 한곳에서 제사 지내는 칠궁(七宮)의 체제가 비로소 완결되었습니다. 왕비가 되지 못한 어머니들이 왕실 제전 개편이라는 역사적 전환 속에서 한 마당 아래 모이게 된 셈입니다.

지금

육상궁은 원래 경복궁 후원 영역에 속했으나 청와대가 들어서고 경복궁 담장이 축소되면서 궁궐 밖 독립된 공간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1968년 1·21 사태 이후 Security 구역으로 지정되어 34년간 일반인의 출입이 완전히 금지되었죠.

2001년 11월말부터 부분적으로 관람객을 맞아 현재는 예약을 통해 둘러볼 수 있습니다.

낮으막한 담장 안에는 동쪽부터 연호궁·육상궁, 덕안궁, 경우궁·선희궁, 대빈궁, 저경궁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으며, 우물인 냉천과 냉천정, 재실이 당시 이설된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육상궁에는 총 몇 분의 신위가 모셔져 있나요?
영조 생모 숙빈 최씨, 경종 생모 희빈 장씨, 진종 생모 정빈 이씨, 장조 생모 영빈 이씨, 원종 생모 인빈 김씨, 순조 생모 수빈 박씨, 영친왕 생모 순헌귀비 엄씨까지 총 7분의 신위가 모셔져 있습니다.
육상궁과 칠궁은 어떻게 다른가요?
원래 영조의 생모 숙빈 최씨만을 모시던 사당 이름이 육상궁입니다. 1908년과 1929년에 걸쳐 다른 6개 사당의 신위가 이설되어 오면서 이 전체 사당 구역을 칠궁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언제부터 일반에 공개되었나요?
1968년 1·21 사태 이후 34년간 출입이 금지되었다가 2001년 11월말부터 부분적으로 공개되었습니다.

같이 보면

출처

유적 JSON(국가유산청 오픈API), 위키백과 「육상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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