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1호터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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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1호터널은 1970년 8월 15일 개통한 서울특별시 중구 예장동과 용산구 한남동을 연결하는 터널이다. 1970년 개통되어 강남과 강북을 연결할 뿐만 아니라 경부고속도로에서 시내로 유출입하는 교통량도 처리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남산1호터널과 2호터널이 계획되었고 그 교차점에 5천~7천 평에 이르는 교통광장을 요새화하여 유사시 방공 대피소로 활용하려는 계획이었다. 1968년 1월 21일, 북한 무장공비 31명이 세검정까지 침투하여 총격전을 벌였던 1.21사태는 무장공비 28명이 사살되고 1명은 생포해 사태를 종료했지만 국가에 큰 충격을 주었다. 1969년 1월 7일 김현옥 당시 서울시장은 ‘서울요새화계획’을 발표하고, 같은해 3월 4일 ‘남산요새화계획’을 공표했다. 1970년 말까지 서울의 남북과 동서를 연결하는 지하 간선도로를 건설하고, 유사시에 서울시민 30만~40만 명이 대피할 수 있는 지하보호시설을 마련한다는 내용이었다. 1970년 7월 31일, 서울특별시조례(제630호)에 의해 유료화되어 착공비용을 회수하기 위해 한국신탁은행은 자회사인 ‘한신부동산’을 통해 통행료를 징수했다. 그러나 예상보다 통행량이 적어 적자는 계속되었고 남산1호터널은 1974년 11월 1일, 서울특별시로 인수되었다. 당시 터널 부실공사가 발견돼 1975년에 보수공사를 진행하면서 5,000평의 대피소 계획은 백지화되었다. 1975년 9월, 1차 보수 실시 후 터널너비는 10.8m에서 10.2m로 줄었다. 1980년대 이후 서울시내 교통량이 급증하면서 남산터널의 통행량도 증가했다. 1996년 10월 5일 서울특별시조례(제3340호)에 의해 유료화는 폐지되고 서울특별시조례(제3339호)에 의해 혼잡통행료로 대체되었다. 남산1호터널은 1975년의 보수공사로 인해 노폭이 줄어든 데다 교통량이 늘어 혼잡이 발생했다. 이에 터널 확장을 위한 왕복4차로 쌍굴공사에 착공하여 총 연장 1,532m, 폭 9m의 터널을 1993년에 완공했다. 1994년 2월부터 1995년 6월까지 기존 터널의 노후 벽체와 천장을 철거하고 라이닝 보강 및 방수처리 등의 보수공사를 실시했다. 남산1호터널은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시민들을 지키기 위해 계획된 터널이지만 서울의 남북을 연결해 줌으로써 강남 개발의 촉진 요인이 되었고 한남대교와 경부고속도로로 이어지는 중추적인 교통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한편, 터널 입구의 ‘남산1호터널’ 글씨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쓴 것으로 전한다.

서울미래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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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근처의 다른 기억

위도 37.5484727 · 경도 126.997578

출처: 서울미래유산(서울특별시) 인증 2013-048, futureheritage.seoul.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