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가구가 살던 섬을 폭파하던 날, 주민들은 어디로 갔을까

1968년 여의도 개발과 밤섬 폭파 · 마포 밤섬

잠깐, 여기 한번 봐 주세요. 지도 위 이 작은 섬은 반세기 전 정말로 폭탄에 날아갔던 자리입니다.
밤섬 폭파 전 전경
밤섬 폭파 전 전경(1968.2.10)
출처: 서울역사박물관, 공공누리 제1유형

이야기

한강대교 서쪽, 여의도와 마포 사이에 작은 섬 하나가 떠 있습니다. 이름은 밤섬. 지금은 사람이 들어갈 수 없는 철새 도래지로 묶여 있는 곳인데, 저는 이 섬을 조사하다가 한 문장에서 멈췄습니다. 이 섬은 한 번 폭탄으로 날아간 적이 있습니다.

1968년 2월 10일 오후 3시, 김현옥 서울시장이 폭파 단추를 눌렀습니다. 그때까지 밤섬에는 62가구 443명이 살고 있었습니다. 목적은 두 가지였다고 합니다. 여의도에 윤중제(제방)를 쌓으면서 한강 물길이 잘 흐르게 하려는 것이 첫째였고, 폭파로 나온 돌을 그 제방 공사에 그대로 쓰려는 것이 둘째였습니다. 섬 하나를 없애서, 다른 섬(여의도)을 만드는 데 쓴 셈입니다.

주민들에게는 마포구 창전동 와우산에 땅과 건물을 내어주는 이주 대책이 마련됐다고 발표됐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사정이 달랐습니다. 서울시는 폭파를 앞두고 주민들의 땅과 건물을 강제로 수용해 퇴거시켰고, 폭파 3~7일 전에야 철거 계약을 맺었습니다. 약속받은 이주지 대신, 철거민들은 상수동 임시 천막에서 1년이 넘도록 지내야 했습니다. 섬을 내주고 받은 것은 천막이었던 셈입니다.

이 일은 오랫동안 '한강 개발의 한 장면' 정도로만 기억됐습니다. 그런데 2026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서울시에 의한 밤섬 주민 강제이주 사건' 조사 개시를 결정했습니다. 폭파로부터 58년이 지나서야, 그날 섬을 떠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공식적으로 다시 열린 셈입니다.

지금

폭파 직후 밤섬은 길게 갈라진 윗섬·아랫섬 두 조각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한강은 그 자리를 그냥 비워 두지 않았습니다. 상류에서 내려온 모래가 꾸준히 쌓이면서, 섬은 다시 넓어지기 시작했습니다. 2013년 측량에서는 면적이 279,531㎡까지 자라 있었습니다. 1968년 기록된 52,087평보다 훨씬 넓어진 수치로, 연평균 약 4,400㎡씩 커진 셈입니다.

이제 밤섬은 사람이 사는 섬이 아니라 1999년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된 철새 도래지입니다. 식물 194종, 조류 77종이 기록돼 있고, 일반인은 들어갈 수 없습니다. 섬 위로는 서강대교가 지나가는데, 다리 위에서 내려다보는 초록빛 섬이 한때 폭탄으로 날아갔던 마을이었다는 사실은 안내판 없이는 알기 어렵습니다.

지도에서 이 핀을 누르면, 같은 좌표 위에 두 개의 장면이 겹칩니다. 62가구가 저녁을 짓던 마을과, 지금은 사람이 들어갈 수 없는 생태보전지역. 같은 자리, 다른 기억 — 이번엔 그 기억의 앞에 아직 못다 한 조사 하나가 남아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밤섬은 지금 어떻게 됐나요?
퇴적으로 섬이 다시 넓어졌고, 1999년부터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돼 사람이 들어갈 수 없습니다.
밤섬은 언제, 왜 폭파됐나요?
1968년 2월 10일, 여의도 윤중제 공사에 쓸 돌을 얻고 한강 물길을 넓히기 위해 폭파됐습니다.
밤섬 주민들은 어디로 갔나요?
마포구 창전동 이주가 약속됐지만, 실제로는 상수동 임시 천막에서 1년 넘게 지냈습니다. 2026년 진실화해위가 이 강제이주 사건의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같이 보면

출처

서울신문「[DB를 열다] 1968년 폭파 직전 공중에서 본 밤섬」(2013), MBC「진실화해위, 밤섬 주민 강제 이주 사건 조사 개시」(2026), 오마이뉴스「밤섬 폭파...사람은 와우산으로, 모래는 윤중로로」, 위키백과「밤섬」, 서울역사박물관 서울역사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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